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에 판문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입니다
북한 측의 대남도발은 이 시기에 자주 일어났었지만
이 사건은 전쟁 직전까지 가게 만든 사건으로 유명하죠
한국전쟁 이후 23년만에 공동경비구역에서 발생한
최초의 살인사건
이 사건으로 미군 2명이 북한군에 의해서
사망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10개월 전인
1975년 6월 판문점에서 UN군 소속
미 소령 헨더슨이 북한 군인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 이후 공동경비구역내의 분위기는 삭막해지고
잦은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의 판문점 지도 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 옆에 CP3(한국군 3 초소)가
북한군 KPA 4, 5, 8에 둘러싸여 있었죠
그리고 북한군이 JSA를 출입하는 다리인
'돌아오지 않는 다리' 바로 옆이었죠
항상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한국군 3 초소를
OP5초소에서 관찰합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있던 미루나무가 문제였죠
5 초소의 시야를 방해한다는 이유로
매년 해오던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실행합니다
사건 발생 12일 전인
1976년 8월 6일
노무자 4명과 UN군 4명이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했는데
이때 북한군이 이의제기를 하면서 작업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러자 경비대는 8월 18일 절단이 아닌 가지치기만 하기로 결정하고
오전 10시 30분 11명의 미군 및 한국군과 5명의 노무자들을
동원하여 가지치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10시 47분 갑자기 북한 육군의 박철 중위가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나타나며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미 육군 대위에게 큰일 나기 싫으면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죠
당연히 보니파스 대위는 이를 무시하고는 작업을 속행하도록 지시했고
11시 30분에는 북한군 경비병의 숫자가 30명으로 크게 증강되었습니다
박철 중위는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라고 2차 위협을 가했으나 보니파스 대위는 재차 이를 무시했습니다
이에 박철 중위는 즉각 "죽여!"라고 소리 지르며 보니파스 대위를 걷어차 폭행을 가했습니다
다른 북한군들은 주먹과 곤봉을 이용해 UN군 장병들을 상대로 마구잡이식 폭행을 가했으며
노동자들이 달아나면서 버려진 벌목 도끼로 아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 살해했습니다
여러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보니파스 대위뿐만 아니라 소대장 마크 배럿 미 육군 중위도 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이에 유엔군과 한국군은 긴급회의에 들어가게 되고
데프콘 3가 발동됩니다
미국의 분노는 상당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비판 서명을 발표하고
미루나무 전체를 제거하고 공동경비구역 차단기도 제거하자고 합니다
북한군이 이때 추가 도발을 하면 강력 대응을 하기로 하면서
폴 버니언 작전을 실행합니다
폴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
지원병력 감시 하에 미루나무를 벌목한다는 작전이었습니다
1976년 8월 21일 마침내 미국 본토와 대한민국의 주변국에 주둔한 미군 기지에서 병력을 편성했는데
그 규모는 상당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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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지 핵미사일 AGM-69 SRAM 탑재가 가능한 F-111 20대가 아이다호 주 마운틴 홈 기지에서 대구비행장으로 전진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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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52 전략폭격기 3대가 괌에서 발진. 군산비행장 주둔 미 공군의 F-4와 대한민국 공군의 F-5 전투기 및 F-4 전투기가 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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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가데나 공군기지에서 F-4 24대가 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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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재기 65대를 탑재한 미해군 제7함대'', 미드웨이급 항공모함과 순양함 5척이 서해안에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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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명 증파 요청. 그중에는 오키나와에 주둔 중인 미 해병대 1,800명도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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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 정예병력으로 20여 대의 차량과 813명 규모의 태스크포스 비에라(Task Force Viera)를 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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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mm M135 파괴포를 갖춘 미군 M728 공병 전차가자유의 다리 조준, 그리고 미 육군 공병부대가 임진강에 도하준비를 위해 다리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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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근처에 미 육군 방공포병 부대의 호크 지대공 미사일 전진배치, 한미연합군 보병부대와 자주포들이 대기.
이런 어마어마한 규모는 북한에 대한 전면적 공격보다는
휴전선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서해안 부분 정리
개성 및 연백평야로의 진격
옛 38선 이남 대한민국 영토의 수복 등을 고려한 병력이었다고 하죠
공산권 측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북한이 추가 도발 없이 침묵한다면 무력시위로 끝낼 계획이었지만
유사시에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면 바로 반격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바로 쫄아버렸죠
미국은 나무가 벌목되는 동안 북한이 도발을 가하면 대대적인 반격을 가할 생각이었는데
북한이 침묵하자 결국 미루나무를 자르고 3개의 초소(KPA 4, 5, 8)를 폭파하는 선에서
작전을 종결짓고 사태는 마무리되었죠
북한 김일성은 작전 1시간 만에 총사령관의 자격으로
UN 측의 사과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사건 이후 공동경비구역 JSA엔
애매했던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확실한
경계가 생깁니다
판문점의 위치는 현재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입니다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개성 특별시 판문점리에 해당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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