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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고 돌아보기

대한항공 858편(보잉707) 공중 폭파 사건에 대해서

by 용기를 내보자 2020. 5. 27.

1987년 일어난 대한항공 858 여객기 폭파사건에 대해서 아시나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일 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소행으로 여객기가 폭파되며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죠

오늘은 대한항공 858여객기 폭파사건과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점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건개요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한 KAL대한항공 보잉 707 여객기가

인도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태국 방콕 공항을 경유해서 인천공항을 목적지로 한 여객기가

방콕공항을 29분 남겨놓고 버마(미얀마) 관제탑과 마지막으로 교신 후

사라졌으며 안에 타고 있던

중동 근무자들 95명 승무원 20명 총 115명 전원이

시신도 찾지 못했고 증발했죠

 

이 사건이 북괴 소행임을 알게 된 계기는

테러범 김현희를 잡게 되면서부터 입니다

 



테러범 김현희

사건 다음날인 11월 30일

대책본부에선 추락 사실을 발표

이 사건은 테러로 공중 폭파됐다고 단정한 가운데

일본 여권을 가진 용의자로 두명이 지목됐습니다

 

아부다비 공항에서 일본여권을 가진 남녀가 출국을 시도하다

위조여권 사용으로 검거됐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달려갑니다

검거된 남성의 70세의 노인 하치야 신이치

여성은 25세의 하치야 마유미였습니다

이들은 부녀지간으로 위장하고 있었는데

검거 후 담뱃갑에 숨겨두었던 청산가리 엠플 깨물어 자살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하치야 신이치는 사망했으나

마유미는 앰풀을 깨물기는 했지만 재빨리 빼앗기는 바람에 자살에 실패했죠


처음에는 위조된 일본 여권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송환되어 조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에서 청산가리 앰풀을 깨물어 자살하는 것은

북한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여 마유미를 국내로 압송할 수 있었습니다

하치야 마유미의 본명은 = 김현희

북한 조선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의 공작원으로서 지령을 받고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에 이릅니다

수법은 시한폭탄과 액체 폭발물을 승무원들이 발견하기 어려운 곳에 두고

내리는 수법을 사용했습니다 이후 시한폭탄에 맞춰진 시간에 도달한 버마(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됐죠

 

북한에 남아있던 김현희의 가족들은 김현희가 자살에 실패하자 김정일이

모두 악명 높은 요덕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북한을 테러 지원국으로 규정했고 김현희는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추후 음모론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일종의 살아있는 증거로 남겨 두려는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과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김현희로부터 더 캐내야 하는 차원에서 전격 사면을 받았으며 이후 본인의 회고록을 저술하기도 하고 가끔씩 안보 강연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등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여객기 폭파의 이유

 

김현희의 증언과 학계의 의견에 따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방해공작을 하기 위해서

폭탄을 설치 여객기를 폭파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때 올림픽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선 자유진영이 참여하지 않았고

1984년 LA올림픽에는 공산진영이 참여하지 않았죠

1988년엔 소련과 중국이 참가하기로 결정하면서

다급했던 북한이 방해공작을 펼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풀리지 않은 의문점

 

이 사건은 여러모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1. 수색과정

KAL 858편은 어디스에서 교신을 한 뒤 타보이에서 또 한차례 교신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타보이에서 교신을 못하고 실종됐죠

상식적이라면 어디스와 타보이 사이를 수색하는 것이 맞는 것인데

처음에 수색을 전혀 엉뚱한 산을 수색하죠

일주일 뒤에야 해상을 수색하는데

그것도 얼마 하지 않고 수색단은 철수를 합니다

뭐 이때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사건도 4년 전에 있었고

외교적으로 협조를 안 해줬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2. 폭발 가능성

김현희의 주장에 따르면

라디오에 컴포지션 350g을 숨겨서 들어가고 액체폭약 PLX를 썼다고 했는데

라디오에 350g이 들어가지도 않을뿐더러 그걸 같이 쓰는 테러는 없었다고

전문가는 이야기합니다

그럼 폭발이 없었다?

3. 폭발 흔적 미발견

1990년 3월 미얀마 근해에서 잔해가 발견됩니다

전문가는 이 잔해에 무조건 폭발 흔적이 남아야 한다고 하는데

구명보트나 잔해에서 발견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2019~2020년

사고가 일어난 지 33년이 지난 지금

MBC에서 바닷속에 잠겨있는 잔해를 찾으러 미얀마로 갔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내죠

여기에 블랙박스가 있다고 합니다

이걸 건져 올린다면 지금까지 의혹들이 한 번에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지금까지 대한항공 858편 여객기 공중폭발사건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아직까지 의문점이 남아있는 사건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인양작업이 이뤄져서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 북한군의 소행인지

아니면 혹시 만에 하나 다른 이유가 있는지 가려졌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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