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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고 돌아보기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 알아보기

by 용기를 내보자 2020. 5. 26.

대한민국 1990년대에는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게 일어났었습니다

그 중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때는 1996년 9월 18일

 

새벽에 택시기사가 정체모를 빛을 보고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잠수함을 발견한 경찰 및 군대는

즉시 병력을 투입해 살아남은 무장공비와 사투를 벌이고

24명의 북괴를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습니다

실종된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

아직 확실한 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무장공비 소탕작전은 무려 49일간 진행됐습니다

 


무장공비 침투과정

 

잠수함이 발견되기 4일 전

9월 14일 북한에서 잠수함이 출발합니다

다음날 강릉시에 도착한 잠수함은

정찰병 3명과 안내원 2명이 상륙해서

정찰조는 군 비행장 및 레이더 기지, 항만, 화력발전소를 정찰/촬영하였습니다

임무를 마친 정찰조를 태워서 북으로 돌아가려던 중

해안가 가까이 오던 잠수함이

암초에 걸려 좌초가 되면서

보안 물품과 서류들을 파기한 뒤

모든 승무원과 전투원이 강릉에

상륙을 하게 됐습니다

이 좌초된 책임을 물어

승무원 11명을 전원 사살하고 14명만이

강릉에서 흩어졌죠

  • 대좌 김동원 (50, 해상처장) - 9월 18일 처형

  • 상좌 김강훈 (48, 해상부처장) - 9월 18일 처형

  • 소좌 신영길 (34, 정치지도원) - 9월 18일 처형

  • 대위 리영호 (29, 항해장) - 9월 18일 처형

  • 대위 김승호 (31, 승조원) - 9월 18일 처형

  • 상위 송동철 (31, 승조원) - 9월 18일 처형

  • 중위 김동현 (27, 승조원) - 9월 18일 처형

  • 소위 변의정 (27, 승조원) - 9월 18일 처형

  • 소위 리영철 (27, 승조원) - 9월 18일 처형

  • 소위 김철진 (27, 승조원) - 9월 18일 처형

  • 소위 박정관 (27, 승조원) - 9월 18일 처형

 1996년 9월 18일 청학산 정상에서 총살된 채 발견된 11명

계급으로 보면 가장 상관이라고 볼 수 있는 대좌 계급의 해상처장 등도 처형됐습니다

대남 침투를 위한 함정을 총괄하는 이들이 생포될 경우

많은 정보가 누출될 위험이 크기에 처형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해상처장과 해상 부처장이 직접 잠수함에 탑승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하며

따라서 이 침투가 상당히 중요한 특수 임무였다는 설이 있죠

침투한 인원중 가장 높은 계급인

해상처장과 힘이 세다는 정치지도원도 처형됐습니다



생포된 이광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의 가장 중요한 증언을 해줬던

이광수는 주민의 신고로 생포하게 됐습니다

생포된 날은 1996년 9월 18일

택시기사의 잠수함 최초 신고가 있던 날

오후 노부부의 신고로 이광수를 체포하게 되죠

 

초반엔 무장공비의 숫자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등

허위정보로 혼란스럽게 했지만

나중에는 항복하라는 방송 등을 하게 됐으며

군 당국에 제대로 협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일하게 생포된 이광수는 전향 후 대한민국 해군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정훈교육 강사로 여러 부대를 돌면서 강의도 한다고 전해집니다


무장공비와의 49일간의 사투

 

11명의 시신과 1명의 생포

이제 남은 13명의 무장공비를 찾기 위해

진돗개가 발령되며

국군 43000여 명이 투입됐다고 합니다

일자별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 9월 19일 10시경, 단경골 일대에서 특공연대에 의해 20여 분간 교전이 발생했다 이때 공비 3명 사살되었다.

  • 같은 날 14시경, 칠성산 일대에서 특전사 3 여단 병력이 적 3명과 접촉하였다. 공비들은 투항 유도에 불응하였고, 자수할 것을 권유하여 열부터 하나까지 숫자를 세기 시작하였는데, 셋까지 세었을 때 누군가 사격을 개시하였고, 이는 지역대원들의 동시 집중 사격으로 이어졌다. 공비 3명 사살.

  • 같은 날 16시경, 오이골 일대에서 교전하여 적 1명 사살하였다. 아군 수류탄의 파편에 의한 전사자 1명이 발생했다.

  • 9월 21일 9시 30분, 칠성산 정상에 특전사가 헬기레펠로 투입되어 3인 1개 조를 이루어 하향식 수색을 실시하던 중에, 그중 한 수색조의 선두에 있던 대원이 매복하고 있던 적(정찰조 2명)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으나 장전이 안된 상태라서 응사가 제한되자 "적이다!"라 외치며 몸을 굴려서 옆에 절벽 아래로 3미터 추락하였으며, 뒤이어 오던 이병희 중사가 즉각 응사하는 순간 적에게 두부 관통상을 당했고, 맨 뒤에 있던 세 번째 대원이 즉각 엄폐하여 응사를 실시했으나 적은 상호 엄호하며 도주하여 사라졌다. 전과 없음. 아군 이병희 중사 1명 전사

  • 같은 날 20시경, 적 수류탄 공격으로 1차 교전 시작. 1차 교전 시 아군 1명 전사 1명 부상. 적의 대화 소리에 2차 교전, 적을 다시 발견하여 3차 교전 결과 적 1명 사살, 아군 2명 부상, 최종적으로 적 1명(대위 김연호) 사살. 아군 1명 전사, 3명 부상.

  • 9월 22일 6시경, 칠성산 일대에서 적 1명을 발견했다. 지근거리까지 유도에 성공했으나, 적이 도주하는 것을 보고 교전을 벌였고 적 1명(중좌 정영구)을 사살했으며, 아군 1명이 전사했다.

  • 9월 23일 6시 30분경, 민간인 안상영 씨가 송이버섯을 따러 작전구역에 들어왔다가 국군에게 오인 사살당한다.

  • 9월 28일 6시 30분경, 보광리 일대 무명고지에서 매복 중 적 1명을 발견하여 생포를 목적으로 유인하였다. 생포하려는 도중에 적이 권총을 뽑으려고 하자 총격을 가해 사살하였다. 이 사람은 부함장 유림이었다. 적 1명 사살.

  • 9월 29일 20시경, 고성군 간성읍 진부리에서 매복 중이던 한대성 병장이 무단이탈을 했다가 국군 오인 사격으로 사망하였다. 아군 1명 전사.

  • 9월 30일 16시경, 목계리 일대에서 공비들을 수색하던 특전사 병력이 인근 산의 정상에서부터 하향 수색하며 내려오고 있었다. 마을 인근까지 내려와 옥수수밭에 이르자 대원 1명이 옥수수단 속에 손을 집어넣었고 안에 무엇이 있음을 느껴서 옥수 수단을 헤치자 은거하고 있던 적이 노출됐다. 순간 대원들은 사격자세를 취하고 투항을 권유했으나 공비가 권총을 빼들자 특전사 대원들이 사격을 실시해서 사살했다. 공비 1명(소위 리철진) 사살.

  • 이 시점까지 육군 특전사, 특공연대, 보병사단 병력과의 교전으로 공비 11명을 사살한다.

한편 북한 정찰조원 3명 중에 생존한 2명은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다.

  • 10월 3일~7일까지 용평 스키장과 월정사 일대를 통과했다.

  • 10월 8일 14시경, 평창군 탑동리 일대에서 산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산을 오르던 민간인 3명을 살해했다.

  • 10월 9일 21시, 오대산 일대에서 아군 매복조와 30여 분간 대치 상황을 벌이다 이탈하였다.

  • 10월 12일, X군단 사령부를 촬영 및 감시하였다.

  • 같은 날 20시 40분경, 연곡면에서 매복 작전을 하던 도중 홍동진 대위가 아군 병사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했다.

  • 10월 14일 20시경, 인제 지역 일대의 민가와 자동차에서 식량 등을 절취해 취식하였다.

  • 10월 16일, 신남에서 인제 방면으로 차량 이동 중이던 학교 교사에 의해 그들이 도로를 따라가던 중 발견되었다. 아군 5분 대기조가 출동하나 합동신문조는 그들을 인부나 근처에 살던 주민들로 판단하였고 대공 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분석하여 접촉 기회를 상실하였다. 정찰조는 이때 도주로를 바꿔 남쪽으로 도주 후 다시 북상하였다.

  • 10월 20일, 소양호를 수영으로 도하하였다.

  • 10월 22일, 양구와 인제 일대 모 사격장 근처에서 싸리나무를 벌목하던 2사단 표종욱 일병을 살해한 뒤 전투복 등을 절취하였다.

  • 10월 25일, X사단 X연대를 촬영했다.

  • 11월 5일 7시 경, 정보분석조와 합동신문조가 교전 현장 일대에 도착하여 작전을 토의하던 중 직접 현장으로 올라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이때 부하 장교가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3군단 기무부대장 오영안 대령은 강행하여 올라간다. 현장을 살피던 도중 기무부대장이 적의 예상도주로를 향해 불을 비춘 순간 그곳에 숨어있던 적의 저격이 있었다. 기무대장 오 대령을 포함한 아군 전사 2명, 부상 8명 발생.
  • 같은 날 8시경, 특공연대가 퇴로를 차단하고 압박 작전을 펼쳤으나 안개 속에서 계속된 적의 조준 사격으로 아군 피해 누적. 1명 전사, 6명 부상.

  • 같은 날 10시경, 특전사 3 여단의 장선용 상사가 배후에서 접근하여 마지막 무장공비인 정찰조원 2명을 사살. 이로써 길었던 대간첩작전은 개시 49일 만에 종료된다.

사살 13명

  • 중좌 만일춘 (48, 기관장) - 9월 19일 사살

  • 대위 원흥천 (34, 통신장) - 9월 19일 사살

  • 대위 박태홍 (31, 부기관장) - 9월 19일 사살

  • 상위 한민섭 (30, 전투원) - 9월 19일 사살

  • 상위 김창복 (29, 전투원) - 9월 19일 사살

  • 중위 량봉선 (29, 전투원) - 9월 19일 사살

  • 신원 미상 정찰조원1 - 9월 19일 사살

  • 대위 김연호 (36, 전투원, 안내원) - 9월 21일 사살

  • 중좌 정영구 (42, 함장) - 9월 22일 사살

  • 소좌 류림 (38, 부함장, 안내원) - 9월 28일 사살

  • 소위 리철진 (28, 전투원) - 9월 30일 사살

  • 신원 미상 정찰조원2 - 11월 5일 사살

  • 신원 미상 정찰조원3 - 11월 5일 사살


국군 및 민간인 피해자

국군의 사상자는 총 12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민간인 사상자는 4명이었죠

 

국군 전사자 명단 (아래 표기된 계급은 모두 전사 후 1계급씩 특진 추서 된 계급임)

  • 오영안 준장(제3군단 제303기무부대장, 3사 4기)

  • 서형원 소령(3군단 불사조부대 기동타격대장, 703연대 정보참모, 학군 24기, 1986.3.4. 입대)

  • 홍동진 대위(68사단 소속, 10월10일 강릉, 학사 21기)

  • 이병희 상사(제3공수특전여단 소속, 9월 21일 강릉)

  • 이동찬 하사(702특공연대 소속, 11월 5일 홍천)

  • 강민성 병장(12사단 51연대 수색중대 소속, 11월 5일 인제)

  • 강정영 병장(11사단 13연대 소속, 9월 22일 강릉)

  • 김대영 병장(27사단 78연대 소속, 9월 25일 강릉)

  • 최태웅 병장(36사단 소속, 11월 4일 홍천)

  • 한대성 병장(12사단 소속, 9월 29일 인제)

  • 송관종 상병(2사단 31연대 소속, 9월 21일 강릉)

  • 표종욱 상병(2사단 노도부대 소속, 10월 22일 양구)

민간인 사상자

  • 안상영(50세, 남) - 9월 23일 출입금지 지시를 어기고 매봉산에서 송이버섯 채취 중, 공비로 오인해 쏜 국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 김용수(45세, 남), 이영모(54세, 남), 정우교(67세, 여) - 10월 8일 오대산에서 송이버섯을 채취하던 중 남성 두 명은 공비의 총에 맞아 살해됐고, 할머니는 둔기류로 머리를 맞은 뒤 목이 졸려 숨졌다. 특히 이영모는, 정확한 조준사격에 머리를 맞아 끔찍하게도 얼굴 부분이 아예 없어지다시피 했다 한다. 참고로 공비들이 기록한 수첩 내용을 보면 세명은 모두 심문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24구의 시신은 북측으로 송환됐습니다

 

해당 인원들은 전부 북한 당국의 예우 차원에서 공화국 영웅칭호가 추서 됐습니다

그리고 모두 조국해방전쟁 참전열사묘에 인장 됐다고 합니다

또한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건물에 강릉 침투 임무를 기념하는

벽화까지 새겨서 붙여주는 등 북한 정권에 의해서

엄청난 선전 감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오늘은 1996년에 일어났던 강릉 무장공비침투사건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이때만 해도 정말 뉴스엔 이 사건만 보도될 정도로

심각했던 사건이었죠

 

이 사건 이후로 강원도 초소근무가 빡세졌다는 후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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