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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고 돌아보기

이리(익산)역 폭발사고 돌아보기

by 용기를 내보자 2020. 5. 20.

이리역 폭발 사고

 1977년 11월 11일 오후 9시 15분 전북 이리시(현 익산시) 이리역(현 익산역)

에서 발생한 대형 열차 폭발 사고입니다 구포역 폭발사고와 함께 최악의 철도사고로 꼽힙니다


사고 원인

 

당시 광주역으로 가던 한국화약(현 한화)의 화물 열차가 정식 책임자도 없이 

다이너마이트와 전기 뇌관 등 40톤의 고성능 폭발물을 싣고 이리역에서 정차하던 중 폭발 사고를 냈습니다

수사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호송원 신 모씨가 어둠을 밝히기 위해 밤에 열차 안에 켜놓은 촛불이 다이너마이트 상자에 옮겨 붙은 것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안전 수칙을 무시한 일개 개인의 단순 과실 사고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렇게 되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총체적 난국으로 두말할 나위 없는 인재였습니다

  • 폭약과 뇌관은 함께 운송할 수 없게 되어 있으나 이 원칙이 무시되었죠

  • 급행료를 챙기느라 화약을 실은 화물열차를 역 구내에 40시간 동안 대기시켰습니다 당시 철도법상 화약류 등의 위험물은 역 내에 대기시키지 않고 바로 통과시켜야 합니다 즉 뇌물 한두 푼을 얻어내기 위해 폭약을 실은 열차를 막아 세워둔 것이죠

  • 이렇게 길어지는 대기 시간에 열 받은 호송원이 술을 먹고 열차 화물칸에 들어갔습니다 애초에 화약을 실은 화차 내부에는 호송원 조차 탑승할 수 없고 호송원은 총포 화약류 취급 면허가 있어야 하며 호송원에 흡연자 과다 음주자를 쓸 수 없는데 이 모든 것은 깡그리 무시되었다고 합니다

  • 화차 내에 화기를 들일 수 없는 규칙을 무시한 호송원 신 씨는 그 안에서 촛불을 켜고 잠이 들었습니다 이 열차 화물칸에는 폭발물이 잔뜩 실려 있었습니다 문자 그대로 화약고 안에서 불을 붙인 것이죠

  • 불이 옮겨붙은 상황에서 깨어난 호송원이 침낭으로 불을 끄려 시도했으나 오히려 불이 더 크게 번졌습니다 이는 위험물을 운반하는 열차에 소화기구가 없었던 것이죠

  • 화약 열차에 불이 붙은 것을 안 철도 요원들은 모두 도망쳐버렸고 검수원 7명이 불을 끄기 위해 화차로 달려가 모래와 물을 끼얹었으나 폭발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역 내에도 제대로 된 소화 기구가 없었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서 도망쳤을 뿐 대피 명령을 내리는 등 제대로 된 대처를 하거나 최소한 위험을 주위에 제대로 알리는 것조차 하지 않았죠


사고 피해

 

폭발 사고로 이리역에는 지름 30 m, 깊이 10m에 이르는 거대한 구덩이가 파였고

반경 500 m 이내의 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었습니다

역에서 근무하던 철도 공무원 16명을 포함하여 59명이 사망하였고

중상 및 경상자가 1158명에 달하였으며 이재민이 1647세대 7800여 명이 발생하였죠

 

이는 그때까지 발생한 폭발 사고 중 최악의 참사였습니다

이전의 이리역 주변이 판자촌과 홍등가가 난립해 있었는데

폭발 사고를 계기로 역 주변이 이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말끔하게 정리되었다고 합니다

홍등가에 거주하던 관련 여성들의 인명 피해도 매우 컸다고 하죠

중요 시설물의 피해도 컸습니다 이리역 역사를 비롯하여

구내의 객화차 사무소 보선 사무소 및 구내에 정차 중이던 기관차/객화차 등 117량이 파괴되었고

선로 1650 m가 파손되었으며 주택 675 채가 완파 1288 채가 반파되었습니다

한편 당시 이리시 창인동에 위치해 있던

익산군청이 폭발의 진동으로 건물 전체에 균열이 가는 피해를 입었으며

이는 1979년 익산군청이 함열로 신축 이전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폭발 지점으로부터 반경 4 km 이내의 건물들의 유리창이 깨지고

주변 1 km 이내로 부서진 철도 레일 및 객화차의 파편이 날아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폭발로 인한 파편이 당시 춘포면까지 날아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익산역에서 춘포까지 직선거리가 7 km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그 폭발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알 수 있죠

대규모의 폭발이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탓에

이리 지역 사람들은 말 그대로 전쟁이 난 줄 알았다고 합니다

 북한군의 공습으로 역이 폭발한 줄 알고

반대로 서울에 사는 친지들의 안부를 걱정했다고 합니다

 

폭발 사고 당시 이리역 앞 삼남 극장에서는 공연 중이었는데

공연이 시작한 지 15분 만에 폭발이 일어났고 극장이 무너지면서 여배우가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 여배우를 같이 있던 남자 코미디언이 엎고 뛰면서 사고 현장을 빠져나왔죠

그 여배우는 하춘화였고 엎고 뛴 남자 코미디언은 이주일 씨였습니다

처벌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한국화약 그룹 김종희 회장은 즉각 대국민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약 90억 원을 모두 피해자와 이재민들에게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폭발 사고의 당사자인 신 모 씨는 사고 직후 도망쳤다가 검거되어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죠


현재의 익산역

 

폭발 후 이전 한 이리역

사고 때문에 이리역은 1년 뒤 당시의 위치에서 떨어진 곳에 신설되었습니다

후에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하여 익산시가 출범하자 역 이름도 익산역으로 바뀌었죠

 

저도 90년 대 초반에 이리역을 가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이리역 앞 광장이 대단히 컸던 인상이 있었는데

사진으로 보니까 그 때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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